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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옥천암

내가 바로 `無冠의 국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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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12-08 14:11 조회5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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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x.php?module=file&act=procFileDownlo국보도 보물도 아닌 철조여래좌상에 더 큰 관심

당장 국보나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없는 문화재 500여점


국보·보물 지정은 편의에 의한 것가치 절대기준 아냐 (매일경제 2013-11-24)


"금동불에서 느낄 수 없는 장엄미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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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사학자들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메트) 특별전 `황금의 나라, 신라`에 출품한 철조여래좌상을 접하고 내린 평가다. 내년 223일까지 일정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반출을 놓고 국내에서 찬반이 엇갈리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런데 정작 두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논란을 빚었던 반가사유상보다 철조여래좌상에 현지 관심이 더 쏠리는 분위기다.


 


이소영 메트 큐레이터는 "전문가들과 기자들이 `어둡고 거친 느낌의 철재질과 고도의 조각 기법은 서양에는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결같이 극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스타일` 싸이가 철불 앞에서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더욱 화제가 됐다.


 


이 불상은 높이가 1.5에 달하며 철주물인데도 넉넉한 얼굴 표정과 천의 주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조각 전문가들은 국보 83호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진단한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기획부장은 "철불은 대체로 귀한데 그중에서도 예술제조기술적 면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철조여래좌상이 국보도 보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 불상처럼 국보로 전혀 손색이 없는데도 지금까지 아무런 타이틀이 붙지 않은 `무관(無冠)의 국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철조여래좌상은 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에 전시돼 있던 것이다. 불교조각실에 있는 철불은 5점으로 형태가 온전하며 모두 국보급이다. 충남 서산 보원사 터에서 출토된 철조불 좌상은 높이가 2.59로 석굴암 본존불보다 크다. 몸통에 비해 큰 머리 등 이상적 비례미를 탈피해 개성과 인간미가 넘친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후기나 고려 초기다. 당시엔 용광로가 없어 쇠를 여러 개 도가니에 1200도 이상 온도로 녹인 뒤 동시에 부어 주조했다. 중간에 멈췄다 다시 부으면 불상이 깨진다. 그래서 철불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권강미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중앙에 조직적인 장인집단이 존재했을 것이며 부유한 지방호족들이 이들을 초청해 철불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철불 얼굴이 제각각인데 돈을 낸 공양자 얼굴을 담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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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철불은 손부분이 사라지고 없다. 공정이 어려워 나무로 제조해 붙였기 때문이다. 그위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혀 불상을 완성한다. 그러나 역시 걸작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드물게 손이 남아 있다. 단정한 얼굴, 안정감 있는 자세, 표면에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뛰어난 주조기술 등에서 통일신라불상의 전통이 엿보인다.


 


중앙박물관이 최근 조사해 보니 철불 등 전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중 지금 당장이라도 국가문화재에 올릴 수 있는 명품이 500점을 넘었다. 경주시 남산 삼릉곡에서 발견된 석조 약사불 좌상은 불상과 함께 불상 뒷부분 광배와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등 한 세트가 완전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통통한 얼굴과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은 8세기 불상의 특징이지만 엄숙한 표정, 화려한 장식의 광배와 대좌 등은 9세기 형식이다.


 


13~14세기 제작됐을 청동소탑(공양탑)은 사리와 함께 탑에 넣거나 전각 내부에 안치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문과 창호, 난간과 기둥, 지붕과 마루 등 건축적 구조가 세밀하다. 목탑이나 석탑을 재현해 황룡사탑 등 중세 탑 형식을 유추할 수 있는 유물이다.


 


14세기 금동 관음보살 좌상은 갸름한 얼굴에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인 신체가 잘 묘사돼 있다. 잘록한 허리에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올려 놓은 뒤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관능적인 자세가 이국적인 불상이다.


 


명품 개수로는 자기가 절반을 넘으며 그 가운데 청자가 압도적이다. 청자 모란 구름 학 무늬 베개는 상감청자 전성기인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베개 위에 운학문과 모란절지문을 상감해 장수와 부귀를 꿈꾸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성형과 조각 솜씨를 맘껏 뽐낸 장식공예적 특성을 잘 살린 수작이다. 청자 용머리 장식 붓꽂이는 용머리, 꽃 등 조각과 비늘, 파도 등 무늬가 절묘하게 표현됐고 색깔도 우수해 최정상급 청자로 분류된다.


 


조선시대 자기 중에서는 청화백자운룡 무늬 항아리가 독보적이다. 청화백자운룡 무늬 항아리는 다수 남아 있지만 중앙박물관 소장품이 최고다.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초문 등 온갖 문양에 구름 속을 헤엄치듯 너울거리는 용 등 복잡한 세부까지 정성스럽게 그리고 칠한 흔적은 궁중 대소사에 사용할 만한 품격을 보여준다.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 비파형세형 청동검, 마제석검, 빗살무늬토기 등 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석기와 청동기 유물들도 국가문화재 명단에 들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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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훌륭한 유산들이 아직까지 국보로 지정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일제강점기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으로 보물을 정했고 1955년 이를 국보로 명칭을 바꾼 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공포되면서 116점을 국보목록에 올렸다.


 


국보는 보물 중에서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지정한다. 20126월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한 태조어진을 마지막으로 317호까지 나왔다. 보물은 유형문화재 중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뽑는다. 보물은 1808호까지 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한다는 것은 관리를 국가가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장은 민간이 하더라도 매매나 국외 반출은 국가가 엄격히 통제한다.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굳이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잘 보존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나열한 유산들도 모두 국가 소유다. 반대로 국보보물은 사찰 등 민간 소유가 많다. 김영나 중앙박물관장은 "대다수 국민이 국보보물만이 귀중한 것이라는 오해를 한다""국가문화재로 분류하는 것은 편의에 의한 것이지 그것이 문화재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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