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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옥천암

불교신문 100부 법보시 사찰 서울 옥천암(불교신문 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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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로나 작성일15-01-18 17:20 조회1,1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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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정범스님 부임

10년새 신도 3배 늘어

종단관 자긍심 심어주는

불교신문은 영원한 도반  

 옥천암.jpg


 
 

서울 세검정(洗劍亭). 조선시대 인조반정을 공모한 신하들이 쿠데타의 성공을 기원하며 칼을 씻었다는 자리다. 내부순환로가 드리운 그늘 아래로 세검정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보면, 건너편 언덕배기에서 아담한 사찰을 만난다.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는 옥천암(玉泉庵).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8년 명성왕후의 명으로 정관스님이 관음전을 짓고 1000일기도를 했다는 기록에서, 짧지 않은 역사를 짐작케 한다. 곁으로 홍제천이 유유히 흐르는 옥천암은 그야말로 도심 속 산사의 운치를 자아낸다.

다만 옥천암은 고즈넉한 절이었지만 그저 조용하기만 한 절이었다. 서대문구 유일의 전통사찰은 신도가 아닌 기도객으로만 붐볐다. 서울 시내의 숨은 기도도량에 불과했던 암자는, 2004년 정범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모범포교도량으로 새롭게 변모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복을 빌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신도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불어넣었다. 취임하자마자 매주 일요법회를 열며 신도들을 불러 모았다. 이후 신도들을 홍제동 홍은동 서대문구 은평구 기타지역 등 5개 권역으로 나눠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렇게 ‘진성’ 신도 300명을 결집했다.

이들이 매월 보시하는 2만원은 오직 불교적 나눔을 위해서만 쓰인다. 신도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돈은 사정이 딱한 지역 고학생들과 노숙인시설 ‘보현의집’에 장학금과 격려금으로 건네어진다. 또한 부처님의 따뜻한 법문이 필요한 군장병들에게 불교신문을 보내주며 불자로서 뿌듯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옥천암에서 자비를 배운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어린이부터 중고생 대학생 일반인까지 계층별 법회도 활성화됐다. 결국 10년 만에 신도 숫자는 3배, 사찰 예산은 6배 이상 증가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2012년부터 사제인 정경스님이 바통을 이어받아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불교신문이 특히 고마워해야 할 사찰이다. 무려 100부를 구독해 신도들과 멀리 군부대에 나누어준다. 사찰의 열성에 힘입어 3분2 이상의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교신문 주간을 지냈던 정범스님과 정경스님의 불교신문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조계종이 직접 발행하고 운영하는 신문인만큼, 개별 신도들에게 종도의식을 일깨운다는 것”이 불교신문의 최대 장점이다. 정경스님은 “대부분의 불교신자들은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성향이 강해 자신의 신행활동에만 열중하는 편”이라면서 “반면 불교신문을 구독하는 신도들은 왜 조계종이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지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부처님의 정법에 근거한 읽을거리와 종단 관련 소식을 빠짐없이 전하면서 애종심을 불어넣어준다”는 전언이다. 다양한 대사회 활동으로 사찰 살림이 빠듯함에도, 불교신문 구독을 줄이거나 중지하지 않는 이유다.

신도회 회장인 이복희(법명 청련화)씨와 부회장 박영애(법명 대광명)씨도 오랫동안 정기구독자로서 공덕을 쌓고 있다. 사비(私費)로 이웃에게 신문을 보시할 정도로 불교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다. 이복희 신도회장은 “예전엔 그저 불자였지만 불교신문을 읽으면서 ‘이젠 나도 종도’라는 인식이 뚜렷해졌다”며 “정법불교의 선구자인 불교신문의 독자층이 더욱 두터워지기 기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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