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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2월23일 (음1.5) 정초기도 초청법문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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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옥천암 작성일15-02-20 13:20 조회1,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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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23일(음1.5) 정초기도 입재 후에 조계종 전 교육원장이신 청화스님의 초청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신심있는 불자님들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날짜: 2559(2015)년 2월 23일(음 1.5) 월요일 

장소: 천년관음성지 옥천암 설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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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스님은 197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조 ‘미소’,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채석장 풍경’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1962년 법인스님(천안 각원사 회주)을 은사로 출가했다. 1981년 총무원 교무국장을 시작으로 총무원장 사서,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초대 의장,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초심호계원장 등 재야 현장과 종단의 주요 소임을 역임했다. 

특히 2004년부터 5년간 교육원장 소임을 맡아 1994년 종단개혁이후 마련된 승가교육 체계를 다지고 내실을 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님과 관련된 언론 자료를 올립니다.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파악하라”

  

 “현재를 떠나서는 무엇이든 존재할 수 없어”

 경전은 문학의 寶庫…산사서 시 창작에 몰두

 소통부재로 소음 일면 중생들의 부름에 따라

  

전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스님이 퇴임 두 달여 만인 지난 21일 조계사에 나타났다. 상하 좌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소통부재가 스님을 다시 도심으로 불러낸 것이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과 함께 하는 ‘사람.생명.평화를 위한 시국법회’ 현장. 초청법사로 나온 청화스님은 “수경스님과 문규현ㆍ전종훈 신부 세 성직자들의 오체투지는 그 자체가 사람ㆍ생명ㆍ평화의 길을 찾고자 정부와 사회를 향해 던지는 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들은 보통 말을 통해 의사전달을 하지만 몸짓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과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며 스님은 ‘오체투지’ 시(詩)를 낭송하며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대답하라고,

대답하라고,

오체투지는

이마와 두 손과

두 발로 묻고 있다.

지금 누군가 들고 있는 안장 앞에

왜 숲은 달리는 말이 되어야 하고,

지금 어떤 사람이 벌리고 있는 밑 없는 주머니를 만나

왜 강들은 모두 돈이 되어야 하느냐고.

가난해도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머리에 고이 이고 온 물,

그 물동이 마구 흔들려

출렁출렁 물방울이 튀기는 오늘.

이미 새소리 끊어진 숲에는

왜 머루 넝쿨이 누렇게 시들며,

고기가 사라진 그 강에는

왜 검은 안개가 자욱하냐고.

 

말해 보라고,

말해 보라고,

오체투지는

땅에 떨어진 것들을 낱낱이 보며,

온 몸으로 묻고 있다.

 

저 징그러운 탐욕들에 의해,

풀도 나무도/ 흙도 바위도

다 무엇이 된다면,

그 다음 사람은, 사람은,

무엇이 되겠느냐고.

 
  
5년 임기의 교육원장 소임을 원만히 마치고 산사로 돌아갔던 스님이 다시 사회현장으로 뛰어든 것인가. 스님은 시국법회에 앞서 이날 오전 정릉 청암사(靑岩寺)에서 교육원장 퇴임 이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시상(詩想)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마치 연기와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려요. 시상이 일어날 때 써야 하는 데 다른 게 눈 앞에 있으니 거기에 몰두할 수 없잖아요. 교육원장 소임이 끝나면 시도 쓰고 수행자로서 미흡했던 점도 보완하려고 했는데 흡족하지 못해요. 아시다시피 1980년대 이후 재야운동, 종단개혁과 개혁종단의 소임 등 외연에 의한 삶만 살아오다보니까 마음이 메말라 가고 심적으로 뭔지 모를 갈등이 일어나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제 스스로 그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것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해요. 그것이 수행자로서 삶을 회향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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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문학소년’의 이름으로 입산해 재야, 종단개혁의 중심에서 활동하다 다시 승가교육현장의 중심에 섰던 신뢰 받는 원로반열의 중진이다. 부족할 것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보통사람들의 삶은 왠지 좁아 보이고 답답했다. 유교경전을 가까이 하는 부친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고 손 내밀면 다가오는 책을 들고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문학은 감성의 산물이잖아요. 감성에는 사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정신영역까지는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사상이 없으니까. 그런데 불교사상에는 심오함이 있었어요. 참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문학과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가 돼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상은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감성적 언어와 문학적 형식을 빌리게 되면 전달하고 표현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래서 종교에도 문학이 필요하고 또 문학에는 종교가 뼈대가 되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종교는 문학의 깊이를 제공해주고 문학은 종교에 대해 감성적 언어와 표현 형식을 주는 수레의 양륜(兩輪)을 이루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산은 모래알이 되어 눕고/ 바다는 메밀밭이 되어 서 있네// 다 변하여 본 모습이 하나도 없건만/ 단청빛 찬연한 어느 대웅전 부처님 앞// 한 번 무릎 꿇고 앉아 부동(不動)한 사람의/ 천년 전 안고 온 한 아름 연꽃만은// 지금도 처음 그대로 있네/ 그 꽃빛 그 향기 온전히 있네” 

데뷔 31년 만에 처음으로 펴낸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실린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름다운 그 사람을 서술적으로 표현하면 자칫 진부하고 지루해 질 수도 있어 부처님을 향한 불심 같은 것을 포착해 표현한 것이다. 

스님은 문인들에게 <선문염송>과 <벽암록>을 많이 권한다. 

“문학적으로도 참 수승한 작품들입니다. 선사들의 언어가 압축된 시로 표현된 것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이 불교의 언어를 시를 통해 표현한 것인데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봐서 많이 권합니다. 하지만 일반 문학지망들에게는 굳이 어떤 경전을 지목하지는 않지만 불교경전을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의 산문 내용도 그래요. 문학지망생들이 찾아오면 질문을 한다고 그럽니다. ‘불교경전 읽어봤느냐’고.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교경전도 안 읽어본 사람이 무슨 소설을 쓴다고 하느냐’고 했을 정도에요.” 

‘불교경전이 문학적 보고(寶庫)’라는 것을 춘원도 입증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 소설 희곡 등 경전에는 문학의 모든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전이 문학적 소양을 함양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듭니다.” 

차(茶)와 선(禪)이 둘이 아니라 하듯이 스님에게 있어 특히 문학, 시와 수행은 둘이 아니다. 수년을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있어도 문학에 대한 정열이 식지 않아 스님은 망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화두를 들었다 놓고 책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지만 책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문학에 치중된 업인가’ 자문하면서도 스님은 책 속에 묻혀 있다보니 불면증 소화불량 신경쇠약 등이 잇따랐다. 몸을 지탱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우연히 들렀던 소요산 자재암에서의 기도로 스님은 다행히 문학과 수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수행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당시 주지 추담스님의 권유로 백일기도를 시작한 것. 장삼자락이 흠뻑 젖을 정도로 기도하고 폭포에서 냉수욕하는 정진을 반복했다. 1년에 두 차례 관음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청정해지면서 그 기도는 ‘평생의 힘’이 됐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평소 ‘지금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를 떠나서는 무엇이든 존재할 수 없는 까닭에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이것을 항상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도심 속 산사에서 다시 ‘오체투지’ 현장으로 떠나는 심정을 스님은 그렇게 표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화스님은…

  

사회민주화 앞장선 승려시인 

종단 승가교육 체계 다지기도 
  

‘오체투지’를 시(詩)로 표현한 청화스님은 행동이 담보되지 않는 말은 공허하고 실망만 안긴다며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특히 정치인들은 국민을 상대로 말을 하다 보니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오게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보통 부처님께서 말씀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팔만대장경이라는 상징적 표현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말씀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아함경>의 말씀을 빌리면 부처님은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가려서 했어요.” 

요약하면 ‘내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비교하면 말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그러면 말하지 않은 것은 왜 그렇게 됐느냐. 그런 말을 해도 너희들의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마음을 평온히 하는데도 도움이 안 되고 더 나아가 완전한 지혜라든가 깨달음이라든가 열반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한 말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고통이다, 이것은 고통의 원인이다, 이것은 고통의 소멸이다, 이것은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이런 말은 왜 했겠는가. 이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고통에서 떠나게 하는 완전한 지혜를 습득케 하는 것…’ 이다. 


[불교신문 2527호/ 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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