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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암에 불교입문... 경한(최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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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작성일11-06-24 21:27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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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 명택 (법명:경한) 9기 수료식을 마친 불자입니다.’
이제야 불자(佛子)라고 할 만 하군요. 사실 무엇을 써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아마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공(空)’이란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머리속이 온 통 ‘공’으로 시작하게 되고, 저의 삶을 공과 같이 하려 하는 부분도 있는듯합니다. 언젠가 교리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팡’하고 깨우칠지는 잘 모르겠으나, 깨우침이란 무엇인지도 꾀나 궁금합니다. 때론 부처님의 말씀이 온통 제 자신에게 하는 것 같아 그저 열심히 하라는데로 하려고 노력도 해봅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저의 새로운 이름 경한(鏡閑)은 정말 저에게 필요한 불명(佛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이 주변으로 이사와 집을 짓고 살면서도 주변에 친구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했었고, 일본유학 후 다시 찾은 이곳에서도 가까운 사람하나 만들기가 왜그리 어려웠는지? 아니면 그리하고 싶지 않았었는지?, 결혼 후에도 저의 가족들은 알아도 제가 그 가족에 가장 혹은 남편인 것을 주변분들이 잘 몰랐었으니 말다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40여년 세월동안 옥천암에 방문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이 얼마나 무심하고 한심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불명도 경한이라 지어주셨더군요. ‘거울 속에 한가히 자기 속에 갇혀 살았던 것에서 깨어나라는 것’으로 알고 깊은 반성과 함께 고이 간직하렵니다.

불교에 입문하면서 ‘참회’ 그리고 ‘죄업’이란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이켜 저의 삶을 보니 ‘너무 많은 죄업 속에서 살고 있었지 않았나?’하고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사회적으로 비춰지는 죄는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모기와 파리를 무심코 죽이는 것은 다반사요. 술과 향락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업수단이라는 명목아래 살았던 지난날들의 죄업, 그리고 부모에게 효순하지 못하고 무심했던 인간으로서 정말 많은 업을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죄업 가운데 나의 참모습인 부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은 비록 그 부처의 마음을 활짝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생활 속에서 스스로 죄를 참회하고, 스스로 절제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이제야 나는 불자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불교 공부를 중간 쯤 하고 있을 때 서울교동초등학교 동창과 만나게 되어 우연히 불교에 대해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무종교의 동창 열변에 말문이 막혀 당황 한 일이 있었지요. 토론의 내용은 다름 아닌 “믿으면 밥 먹여주나?”, “사회의 불만 같은 것을 해소해 주나?”라는 식의 대화였었습니다. 사실 서로의 접근 방법과 방향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쉽게 말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로 줄여진 대화였죠. 대화중에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내 생각만을 옳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생각나서 그만두긴 했지만 그 일로 한 동안 그 친구와는 연락이 뜸해졌었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간간이 이메일로 소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혹여 제가 과거에 묻혀 ‘상대의 생각을 무시한 것이 아니가?’ 하는 반성도 해보는 기회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가까이 있는 제 여식도 교회에 다니며 아빠 수료식이라고 잠시 법당에 온 것이 불교를 접한 전부라니! 이렇듯 자식도 내 맘 데로 되기 어려운데, 나이들은 동창 녀석에게 열변을 토했으니 ‘한심한일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거나, 그 일로 나의 얇고 어설픈 불교 지식을 말하는 것에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는 불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하여튼 좀 더 배워서 만나기를 기원했답니다. 그 후 불교 방송도 보고 열심히 들으면서, 정진하려 하였으나, 혼동이 오는 것을 느끼고 차근차근 기본부터 다져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름 착실히 절에도 오고 기본교리도 듣고 하였지요. 이렇듯 동창 녀석과 제 여식에게 감사하는 계기가 된 것은 이와 같은 일로 인하여 나를 생각해보게 되고 불교를 더욱 생각하고 정진 하게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는 귀 담아 들어 줄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 지금은 제 자신부터 열심히 정진 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불상 앞에만 가면 생각도 필요 없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절하는 것 외는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거든요. 끝없이 참회하고 발원하는 것만이 제 마음 지옥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 천당의 마음은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극락의 마음을 얻게 되겠지요. 부처님께서 ‘극락과 지옥은 제 마음에 있다’고 하신 말씀을 깊이 세기며 정진 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시간도 세월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편합니다.
 
이제는 모기도 함부로 못 잡게 되었네요. 덕분에 긁게 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어요. 아무 곳에서나 박박 긁게 되는 것이 속으로는 꾀나 우스운 일이지만 이렇게 변하게 되는 자신을 돌아보며 놀랍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불상 앞에 서면 아무 생각 없이 절만 하게 되네요. 남들처럼 한 시간씩 무언가 중얼 중얼 할 수 있는 날이 저에게도 오겠지요. 저는 모든 종교의 목표는 하나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데 내 종교, 네 종교 혹은 시비선악에 대한 부분 그리고 인간세상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중에 자비와 사랑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져야 하는지? 이러한 고민들은 아직 저에게 있어 “이 뭐꼬” 와 같은 화두인 것은 사실입니다. 끝으로 탤런트 상인스님과 늘 정겨운 정범주지스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부처님과의 좋은 인연을 맺어준 것에 반듯이 보은(報恩) 하리라고 서원하여 봅니다. 성불하십시오.
 글. 경한(최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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