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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암과 보도각 10문 10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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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09 작성일14-06-12 14:27 조회1,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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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암과 보도각 10문 10답

[1]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이름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나요?
- ‘좋은(玉) 샘물(泉)이 있는 암자(庵)’라는 뜻입니다. 우리 절 보도각 관세음보살님 곁에서 약수가 솟아나와 사람들이 많이 오면서 생긴 이름인 것 같습니다.

[2] 그 샘물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 일주문과 종무소 부근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인근 주택을 정비하고 제방을 쌓는 과정에서 사라진 듯합니다.

[3] 종무소 옆 벽이나 문화재 설명 게시판에 ‘보도각 백불’이라고 적혀 있던데 그게 무엇인가요?
- 일주문 옆으로 내려가면 전각이 있지요. 그 건물 이름이 보도각(普渡閣)으로서 ‘모든 중생을(普) 제도(渡)하는 건물(閣)’이라는 뜻입니다.
- 백불이란 하얀(白) 부처님(佛)이라는 뜻으로서 보도각 내부 큰 바위 앞면에 새겨진 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백불은 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4] 왜 ‘백불’이 정확한 이름이 아니지요?
- 머리카락이 길고 보배로 장식한 모자를 쓰셨으며 장식품을 달고 계시지요. 이런 모습은 부처님이 아니라 보살님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불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분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이라고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200 여년 전 정조 시대의 서울을 묘사한 <한경지략>에서도 이 분을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 하였습니다.

[5] 그러면 정확한 이름은 무엇인가요?
- 2009년에 공식 명칭을 ‘옥천암 마애좌상(玉泉庵 磨崖坐像)’으로 변경하였습니다.
- 하지만 이 이름에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마애(磨崖)란 암벽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뜻이고 좌상(坐像)이란 앉아 있는 모습의 형상이라는 뜻이니 단순히 외형만을 가리킬 뿐이지요. 그러나 오래 전부터 불자들은 이 분을 관세음보살님으로 모시고 신앙하였으니 ‘옥천암 마애관세음보살좌상(玉泉庵 磨崖觀世音菩薩坐像)’으로 변경하여야 합니다.

[6]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분인가요? 부처님과는 다른가요?
- 부처님은 스스로 진리를 깨달으신 분이고, 우리들은 그 분의 가르침을 따라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런 제자들 가운데 중생을 가장 가까이서 돌보겠다는 발원을 한 분이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즉 무고한 형벌을 받거나 멀리 여행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는 등 중생이 어려움을 겪을 때 이 분의 명호(名號)를 부르면 관세음보살께서는 지혜와 자비로 그 사람을 이끌어 주십니다.

[7] 바위에 새겼는데 왜 표면이 그렇게 하얀가요?
- 호분(胡粉), 즉 조개껍데기를 갈아서 표면에 입혀 놓았기 때문에 하얗게 보입니다.

[8] 이 분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나요?
- 1973년 6월 7일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9] 옥천암과 보도각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은 언제 누가 만드셨나요?
- 현재까지 정확한 기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세음보살님이 먼저 조성되고, 이후 전각과 절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 관세음보살님은 고려 시대 혹은 그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선 보살님의 얼굴이 둥글고 눈은 가늘고 길며 입이 작은데 이는 고려 시대의 특성에 가깝다고 합니다. 또한 <용재총화>에서 불암(佛岩)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문헌상으로 가장 앞선 기록입니다. 책의 저자는 조선 초기에 살았던 성현(成俔, 1439-1504)이니 그 이전에 조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보도각이 만들어진 시기도 정확하지 않지만 고종 5년(1868)에 명성황후의 명을 받아 정관(淨觀) 법사가 해수관음 옆에 관음전을 건립하여 천일기도를 올렸다는 기록이 권상로의 <한국사찰전서>에 있습니다. 또한 1902년에 카를로 로제티라는 서양 사람이 찍은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 그러나 옥천암 뒷산인 삼각산(북한산)의 불교 역사는 삼국 시대부터 이어져 왔으니 조성 연대가 더 올라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종로구 신영삼거리와 홍은사거리에는 각각 삼국 시대에 창건된 장의사(莊義寺)와 고려 시대에 창건된 사현사(沙峴寺)가 있었고, 그 외에도 승가사(僧伽寺),  소림사(少林寺), 문수사(文殊寺), 중흥사(重興寺), 진관사(津寬寺) 등의 사찰이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 스님들이 인근에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을 쌓고 도성을 지켜 왔지요. 또한 예로부터 백성들은 보도각 관세음보살님이나 인근 부암동 부침바위를 찾아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렇게 오랜 불교 전통 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이 조성되고 자연스럽게 보도각과 옥천암도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10] 옥천암과 관련된 전설이 있나요?
-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유명합니다. 서울시에서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 1394년 10월 28일을 서울시민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2006년 11월에는 보도각 관세음보살님이 이달의 서울시 문화재로 선정되었습니다.
- 임진왜란 때 도원수 권율 장군이 여기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당시 왜군은 보도각 관세음보살상을 하얀 옷을 입은 조선군으로 착각하고 공격하여 총알을 소진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틈타 권율 장군의 부대가 왜군을 섬멸하였다고 합니다.
- 조선 후기,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아들을 위해 여기에서 기도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후에 그녀의 아들은 고종으로 등극하였습니다.
- 고종의 정비(正妃)인 명성황후가 정관(淨觀) 법사에게 명을 내려 해수관음 옆에 관음전을 건립하고 천일기도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고양군 신도면에 살던 노총각 윤덕삼(尹德三)이 여기서 기도를 올려 아내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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